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이브러햄 링컨 (문단 편집) ==== 사남 토머스 링컨 (Thomas Ted Lincoln) ==== 막내아들 토머스 '테드' 링컨은 1853년 4월 4일 생이다. 세 형제 중에선 그나마 더 오래 산 아들이다. 유난히 머리가 커서 어린 나이에 머리 무게를 잘 감당하지 못해 머리를 흔드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붙은 별명이 '올챙이 머리'. 또 태어나면서부터 구강구조에 이상이 있어 발음이 불분명하고 어조도 이상했다고 전해진다. 형들과는 다르게 굉장한 말썽꾸러기였는데 서고의 책을 몽땅 뒤엎어놓는가 하면, 고관들에게 소방호스로 물대포를 퍼붓는다든지, 찻잔을 복도에 늘어놓는 장난을 자주 쳐서 백악관의 골칫거리로 꼽힐 정도였다고 한다. 셋째형 윌리엄과도 장난감 때문에 많이 싸웠다고. 보다못한 어머니 토드가 [[가정교사]]를 구했지만 테드는 공부를 상당히 싫어했고 교육에 큰 진척이 없었다. 형처럼 아버지와 [[극장]]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무슨 우연인지 링컨이 암살당한 1865년 포드 극장에 가던 날, 에드는 포드 극장에 가지 않고 선생님을 따라 포드 극장 맞은편의 그로버 극장에서 아동극 《[[알라딘]]》을 관람했다. 그런데 연극 중 잠시 휴식시간에 공연 관리자가 무대로 올라와 링컨 대통령이 옆 포드 극장에서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발표하자 쇼크를 받았는지,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고 겨우겨우 백악관으로 후송되다시피 돌아와 잠이 들었다. 다음날에야 아버지가 죽었다는 걸 제대로 실감했는지 '''그 때부터 사람이 올바르게 바뀌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묵묵히 있는가 하면, 우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끌어안고 위로까지 했다고 한다. 테드를 위로하러 온 백악관 직원에게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난 이제 대통령의 아들이 아니다. 언젠가 나도 아버지의 곁으로 갈 거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을 보면, 아버지의 죽음을 제대로 실감했지만 다른 가족들을 위해 그 슬픔을 참아낸 것으로 보인다. 링컨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은 [[백악관]]을 떠나 [[시카고]]로 이사했는데, 아버지를 닮아 글 실력이 뛰어났던 테드는 브라운 초등학교에서 학교 신문 편집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18살이 되던 1871년에 갑자기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져 앓기 시작했고, 체중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등의 심각한 증세를 보였다. 심지어 누우면 숨을 쉬지 못해서 어머니 토드가 테드를 의자에 앉혀서 재워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결국 2개월 뒤 어떻게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7월 15일에 사망하고 말았다. 테드의 병명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대부분은 [[폐결핵]]을 유력하게 꼽는데, [[폐렴]], 흉막염 등도 가능성으로 거론되고 있다. 테드의 시신은 두 형처럼 나란히 아버지의 곁에 매장되었다. 당시 맏형 로버트가 동생의 관을 운구했는데 어머니 메리 토드는 남편에, 세 아들을 연달아 잃은 쇼크가 극심했는지 장례식 내내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